하루가 15개월이 됐을 무렵 임신을 했었다.
하루를 임신했을 때, 얼리테스터기에서 두 줄이 나오자마자 병원에 갔었고 너무 일찍 가서였는지 병원에서 negative가 나와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하루는 뱃속에서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40주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다가 우리에게 왔다.
하루가 아장아장 걷고 옹알이를 하고 어떤 짓을 해도 귀엽고 사랑스러울 때 찾아왔던 두 번째 아이.
경험도 있겠다 8주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서 피검으로 임신 확진을 받았고, 3주 후 인 11주 차 검사를 하루 앞두고 하혈이 시작 됐다. (5주 차에 아기집 봐주는 한국과 달리 미국은 웬만해서는 8주 이전에 초음파를 안 봐준다).
2021년 1월 4일.
급하게 예약 잡고 간 병원에서 초음파를 봤을 때 아이의 심장은 뛰지 않았고, 이미 8주 차에 성장을 멈췄기에 나올 준비가 되어 약물로 임신 종결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권유를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의사에게 나는 굉장히 이성적으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심장이 뛰지 않는 아이를 초음파로 본다는 건 내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충격적이었고, 처음엔 눈물도 나지 않았고 모든 생각이 멈췄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동물적인 직감이 들었고, 출근 전이었기에 회사 팀장님에게 먼저 전화를 했다. 팀장님한테 전화하면서 눈물이 터졌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 순간 나는 정말 짐승 한 마리처럼 울부짖었던 거 같다.
얼마나 원망했는지 모른다. 8주 차에 갔을 때 초음파를 봤으면 아이가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하루 때처럼 비타민 같은 걸 꼬박꼬박 챙겨 먹었으면 살 지 않았을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원망의 대상이었다.
둘째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 찾아와 준 아이. ‘응답’이는 그렇게 우리를 떠났다. 약물로 진행한 임신 종결은 생각보다 힘들고 괴로웠다. 2021년은 그렇게 눈물과 원망과 괴로움으로 시작되었다.
약물 배출의 과정은 생각보다 괴로웠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4개의 질정약을 넣으면 4시간 후부터 하혈과 함께 안에 있는 아이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리고 12시간 후쯤 4알을
다시 넣으면 그때까지 안 나왔던 것들이 완전히 나오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고, 약물배출로 다 해결이 안 되는 경우에는 다시 소파술을 진행해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하혈이 많을 경우에는 탈수도 올 수 있고 기절할 수 도 있기 때문에 파워에이드 같은 스포츠음료를 옆에 두고 수시로 마시면서 응급 시에는 911을 부르라고 당부해 주셨다.
오전 8시에 병원에 다녀왔고, 처방받은 약은 오후 12시쯤 준비가 되었다. (미국은 병원에서 처방전을 내가 다니는 약국으로 바로 보내주고, 약국에 가서 2-3시간 정도 기다리면 제조된 약을 받을 수 있다). 일을 갈 수밖에 없었던 남편에게 부탁해서 2시쯤 남편이 약을 집에 가져다주었고, 4시간 후부터 배출이 진행된다고 했기에 남편에게 8시까지는 집에 와서 하루를 봐 달라고 부탁했다.
다행히 남편이 제시간에 와 주었고, 그렇게 약물 배출이 시작되었다.
** 다음 글에서는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은 상황을 앞두고 있거나 어쩔 수 없는 유산으로 약물 배출을 준비 중이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고자 쓰는 글이기에 미리 알려드립니다 **